TAG 촛불
효자동 이발사는 약 16년간 애국하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그 분의 이발을 해왔던 어느 이발사의 이야기 이다. 부정선거를 위해 투표함을 산에 묻고 투표용지를 먹어버리는 행동을 애국이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속아서 그저 행했던, 바보같은 그 이발사의 이야기다. 실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60~70년대 독재정권시절 말도 안되는 음모, 공포와 혹세무민으로 사람들을 지배했던 그 시절 이야기다.
뭐.. 독재정권 나쁘고 지금 MB정권이 독재라는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 이 영화의 이야기를 꺼내는것은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봤을 때 가장 가슴아팟던 장면이 있었다. 그 시절 간첩이 하필이면 설사를 하다가 잡히는 바람에 남은 잔당들도 설사에 걸렸을리라 추정하고, 급기야 설사하는 사람은 간첩으로 의심을 받는다.
이발사의 아들도 재수없게 설사를 했고, 충직한 애국심의 소유자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설사를 한다고 신고를 해버린다. 어린 아들은 간첩 누명을 쓰고 어디론가 끌려가 심한 전기고문을 받고 하반신 불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아들을 보고 이발사는 자식에 대한 슬픔과 미안함, 그러면서 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고 울부짖으며, 이발사 답게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잘라낸다.
어제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하셨다. 참으로 안타깝고 그의 비보에 이유모를 애잔한 슬픔이 한동안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2003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선택하였고 그를 통해 무엇인가 희망을 엿보기도 했다. 주변에 그를 욕하고 아마추어라도 뭐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희망이었고 그만큼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그를 통해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문에 그의 분향소가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출근하는 길에 들러 국화 한송이라도 그의 영정에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분강개하고 봉하마을까지 달려가 자원봉사는 못 할지라도 적어도 그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찾아보니 역시 대한문앞에 분향소가 설치되었는데, 아무리 시민들이 임시로 설치한 분향소라고 해도 전직 대통령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했다. 거기다가 청계천도 있고 시청광장같이 넓은 장소도 있는데... 하이 서울 페스티벌인가 지랄인가를 한다고 그 돈지랄을 해가면서 광장을 쓸 때가 엇그제인데, 그런 장소를 못 쓰고 대한문 앞.. 그 비좁은 장소가 왠말인가 싶었다.
여기에 한술더떠 더 웃기는 일은 분향소가 불법시위의 온상이라는 경찰의 인식으로 대한문 주변을 경찰버스로 둘러싸고 분향소로 들어기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초라한 분향소의 영정사진에 비라도 막아줄 천막지붕 하나 설치하지 못 하게 봉쇄했다는 것이다.

아.. 여기가 과연 사람 사는 곳인지 싶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현란한 정치마케팅에 속아 경제를 살린다는 감언이설에 다시 한번 속아 지금 현 정권을 만들어준 무식한 우리 스스로를 책망해야겠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다 싶다.
4년 뒤에 두고보자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 MB정권이 들어서는게 싫어 투표하지 않았던 사실이 후회스럽다. 민주화가 되었고 그런 가치를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이루어낸 가치가 한순간의 정치쑈로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4년 뒤에 투표하는 그 행위 마저도 효자동 이발사처럼 스스로 머리를 마구 잘라버리는 딱 그정도의 저항이 아닐지... 우리 모두는 그저 무기력하고 아둔했던 효자동 이발사일 수 밖에 없는지.. 너무도 답답하다.
이발사의 아들도 재수없게 설사를 했고, 충직한 애국심의 소유자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설사를 한다고 신고를 해버린다. 어린 아들은 간첩 누명을 쓰고 어디론가 끌려가 심한 전기고문을 받고 하반신 불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아들을 보고 이발사는 자식에 대한 슬픔과 미안함, 그러면서 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고 울부짖으며, 이발사 답게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잘라낸다.
어제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하셨다. 참으로 안타깝고 그의 비보에 이유모를 애잔한 슬픔이 한동안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2003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선택하였고 그를 통해 무엇인가 희망을 엿보기도 했다. 주변에 그를 욕하고 아마추어라도 뭐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희망이었고 그만큼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그를 통해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문에 그의 분향소가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출근하는 길에 들러 국화 한송이라도 그의 영정에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분강개하고 봉하마을까지 달려가 자원봉사는 못 할지라도 적어도 그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한술더떠 더 웃기는 일은 분향소가 불법시위의 온상이라는 경찰의 인식으로 대한문 주변을 경찰버스로 둘러싸고 분향소로 들어기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초라한 분향소의 영정사진에 비라도 막아줄 천막지붕 하나 설치하지 못 하게 봉쇄했다는 것이다.
아.. 여기가 과연 사람 사는 곳인지 싶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현란한 정치마케팅에 속아 경제를 살린다는 감언이설에 다시 한번 속아 지금 현 정권을 만들어준 무식한 우리 스스로를 책망해야겠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다 싶다.
4년 뒤에 두고보자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 MB정권이 들어서는게 싫어 투표하지 않았던 사실이 후회스럽다. 민주화가 되었고 그런 가치를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이루어낸 가치가 한순간의 정치쑈로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4년 뒤에 투표하는 그 행위 마저도 효자동 이발사처럼 스스로 머리를 마구 잘라버리는 딱 그정도의 저항이 아닐지... 우리 모두는 그저 무기력하고 아둔했던 효자동 이발사일 수 밖에 없는지.. 너무도 답답하다.
기묘사화 [己卯士禍]
1519년(중종 14) 남곤(南袞) ·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진 사류(新進士類)들이 숙청된 사건.
네이버 백과사전
1519년(중종 14) 남곤(南袞) ·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진 사류(新進士類)들이 숙청된 사건.
네이버 백과사전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490년전 조광조등 신진 사대부는 중종반정을 통해 공신작위를 받고 하는 일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수 많은 훈구세력을 몰아내고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펼치려 했다. 심지어 훈구세력의 작위와 전답, 노비등을 국가에 귀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그들과 극한으로 맞서게 된다.
심각한 위협을 느낀 훈구세력은 그 유명한 '주초위왕'의 4글자를 꿀을 묻혀 나뭇잎에 쓴 뒤 이를 벌레가 갉아 먹게 하고 그 나뭇잎을 중종에게 보여 조(趙)씨가 왕이되여 하다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계략꾸민다. 이로 인해 조광조를 위시한 신진 사림파 세력은 사형, 유배, 파직등 철퇴를 맞게 된다.
얼마전 한계레 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났다.
일단 이런저런 감상은 집어치우고 왜 한예종에 이런일이 생기는건지 궁금했다. 이전 정권과 소위 코드가 맞았다고 하는 문화계 주요 인사는 모두 MB정권 초기 몇 달이내 바로 물갈이가 되었는데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보여지는 황지우 총장이 무려 1년 반이나 버텼다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들의 관점으로 보면 요즘 쇠심줄로 화제가 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의 버티기 보다 더 질긴 셈인데, 황지우 총장이 뭐가 아쉬워서 그 더러운꼴을 보면서 버티고 있었는지, 그간 버티면서 얼마나 고생이 심했고 인간적인 좌절이 있었을지 위의 기사 내용을 보니 살짝 짐작이 간다.
아마도 황총장은 그가 추진한 U-AT(유비쿼터스-아트 테크놀로지) 통섭교육에 애착이 있어 그 험한꼴 당하면서 버티지 않았나 싶고, 정부당국도 이러한 통섭교육이 삽과 곡갱이로 재건되어야 할 대한민국이 이러한 좌파교육을 통해 불순세력이 양산될 수 있다는데 불안감을 느낀것 같다. '유비쿼터스-아트 테크놀로지' 일단 무시무시 하다.
이 교육의 커리큘럼이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한겨레 기사 내용으로 유추하자면 요즘같은 컨버전스 시대에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인문학, 최신 과학기술등이 소통하는 융합교육을 통해 전인적인 예술인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 취지가 사실이라면 대단히 훌륭하고 심지어 이러한 교육시스템이 대한민국을 떠나 전 지구적으로 시도된 사례가 있는지 싶다. 이런 시도는 대단히 혁신적이며 이를 잘 해내고 잘 키우면 적어도 서구세력의 반대편 지구반쪽의 문화예술계는 석권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또한 이런 교육시스템은 문화예술이라는 도메인에만 국한 시키지 않고 전 분야로 확산시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 99.9%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국영수, 암기로 나눠지는 과목만 배우지 않았는가?
유인원 장관 이하 변찌질 등의 한MB홍위병 멍멍이들은 그런 아키텍처에 아무런 그림을 보지 못하고 그저 뭘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현 정권과 대립했던 이전 정권의 커리큘럼이라는 이유로, 딴따라와 환쟁이들과 광대들이 그냥 몸이나 굴리고 재주나 넘으면 되지 무슨 공부를 하냐는 말도 안되는 선입관으로 이런 시도가 무산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번 한예종 사태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유에이티 통섭교육 하지 말고.. 그냥 좋게 이야기 할 때 이전 정부 인사였으니 제발 조용히 나가라는 거였다. 그들이 보기에 좌파 빨갱이 황지우 총장과 괘를 같이 하는 황라인들도 줄줄이 나가 달라는 요구였다.
이게 현실이다. 투표용지에 도장 한번 잘 못 찍은 죄로 이제부터 영화관에서는 대한늬우스를 봐야 하고 얼마 팔리지도 않는 음반에 낑겨있는 건전가요를 들어야 할 것이고, 검열의 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영화와 출판물이 난도질 당하는 그런 세상이 다시 올 것 같다.
그들의 기득권에 저항한다고 해서 꿀바른 나뭇잎을 벌레먹게 하는 치졸한 방법으로 정적을 몰아냈던 훈구세력의 망령이 5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나타난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